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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의 항암일지

항암 중 나를 웃게 해준 소소한 취미, 텃밭과 무화과 나무 이야기

by 같이 걷는길 2025. 5. 18.

항암치료 중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마음을 어루만져준 소중한 취미, 한국야채 모종과 무화과 나무를 키우는 이야기를 나눕니다.

 

 

서론: 웃을 일이 적어진 시간 속에서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집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 보니, 밖으로 나가는 일도 줄어들고 하루 대부분을 침대와 소파, 그리고 부엌 주변에서 보내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이 시간이 지루하고, 또 외롭기도 했습니다. 뭔가를 하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답답할 때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문득, 몇 해 전부터 시작한 작은 텃밭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마당 한 켠에서 자라나는 깻잎, 오이, 부추, 파, 토마토, 호박… 그 아이들이 나에게 다시 한 번 ‘심고 키우는 즐거움’을 떠올리게 해주었습니다. 무엇보다 작고 연약한 새싹이 흙을 뚫고 올라올 때 느껴지는 희망은, 항암으로 지쳐있던 제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본론: 씨앗과 모종, 그리고 소중한 일상

요즘 저는 모종을 키우느라 바쁩니다. 아직 바깥 공기는 쌀쌀하지만, 5월 중순쯤이면 따뜻해질 거란 걸 알기에 지금부터 준비를 해두고 있습니다. 특히 캐나다에서 한국 야채를 사 먹는 건 꽤 비싼 일이라, 저처럼 한국 식재료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텃밭이 큰 도움이 됩니다.

깻잎은 특히 제 최애 야채입니다. 한국에서는 흔하지만, 여기서는 열 장에 2불이 넘기도 합니다. 하지만 작년엔 텃밭에서 깻잎이 너무 잘 자라서 이웃들과 나눌 수 있을 정도로 풍성했습니다. 그 경험이 제게는 큰 기쁨이었고, 올해도 벌써부터 기대가 큽니다.

항암 이후, 많은 것에 흥미를 잃었던 저에게 씨앗을 고르고 모종을 키우는 과정은 새로운 에너지를 주었습니다. 토마토나 호박 같은 작물은 현지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참외, 아삭이 고추, 오이 같은 작물은 씨앗부터 직접 키워야 합니다. 씨앗 봉투를 꺼내고, 어떤 순서로 심을지 고민하는 그 시간이 마음을 살짝 펴주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실패도 있었습니다. 작년에는 힘들게 키운 모종들이 5월 말의 갑작스러운 한파로 모두 얼어 죽었습니다. 퀘벡의 날씨는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6월 중순이 되기 전까지는 절대로 모종을 밖으로 내놓지 않기로 다짐했습니다.

 

결론: 무화과 나무와 함께 시작되는 새 계절

올해는 새로운 도전을 해보려 합니다. 바로 무화과 나무를 키우는 일입니다. 사실 몇 해 전 블루베리 나무 두 그루를 키워봤지만, 겨울을 견디지 못하고 죽어버렸습니다. 아쉬움이 컸지만, 그 경험이 있었기에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었습니다.

무화과는 열대 작물이지만, 몇몇 품종은 추운 지역에서도 잘 자란다고 합니다. 저는 여러 품종을 조사한 끝에 세 가지를 선택했습니다:

Hardy Chicago (하디 시카고)
시카고처럼 추운 지역에서도 살아남는 품종입니다. 퀘벡 겨울도 견딜 수 있고, 뿌리만 살아있다면 줄기가 얼어도 다시 자란다고 합니다. 보랏빛 작고 달콤한 과일이 특징입니다.

무화과 나무
무화과



Ronde de Bordeaux (론 드 보르도)
프랑스 품종으로, 여름이 짧은 지역에도 맞는 빠른 수확형입니다. 껍질이 얇고 부드러워 생으로 먹기 좋습니다.

Brunswick Fig (브런즈윅 무화과)
열매는 중간 크기이며, 달콤하면서 약간 상큼한 맛이 납니다. 생으로도, 잼으로도 활용이 좋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무화과 브런즈윅

 

이 나무들을 뒷마당에 심을 생각을 하면 마음이 두근거립니다. 다시 자라고, 꽃 피고, 열매 맺는 과정을 함께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제겐 소중한 희망이 됩니다. 병으로 멈춰진 시간이 있지만, 흙과 식물은 제 삶에 ‘계속 자라고 있다는 감각’을 줍니다.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버거운 순간도 있지만, 그 안에 이런 소소한 기쁨이 있다는 것을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작고 평범해 보일 수도 있는 이 취미가, 제게는 다시 웃을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친구들입니다.

2025.05.17 - [캐나다에서의 항암일지] - 캐나다와 퀘벡의 의료 시스템 및 암 정기검진 가이드